소니는 일본에서 가장 많은 다국적 기업 중 하나이다. 사업에는 전자, 반도체, 게임, 엔터테인먼트, 금융이 포함된다. 현재 방송장비, 스마트폰, 이미지센서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설립자 모리타 아키오, 이노우에 시게마츠로 1946년 5월 7일 도쿄 통신사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소니 출시 이후 세계적으로 유명한 제품으로는 포켓 트랜지스터 라디오, 트랜지스터 텔레비전, 휴대용 음악 플레이어 등이 있다. 1945년 말, 도쿄의 니혼대교에서 폭탄에 맞아 백화점 건물 안에서 깊숙이 자리 잡은 이노우에가 라디오 수리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장남 모리타라는 회사가 합류하여 도쿄전기통신 공업 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이 회사는 일본에서 Type-G라는 테이프 리코더를 처음 만들었다. 직원은 2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1940년대 후반에 생산된 첫 제품은 전기밥솥이었다.
1950년대 초 미국을 여행하던 이노우에씨는 벨연구소가 트랜지스터를 발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벨 연구소가 일본이 트랜지스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고 자신한다. 트랜지스터의 군사용도를 연구하는 대부분의 미국 기업들과 비교하면, 이와카와 쇼타이는 이를 통신에 적용하려 하고 있다. 미국의 레싱과 텍사스 악기들은 최초의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생산했고, 에덴 회사는 상업적으로 그렇게 했다. 이 회사는 1958년에 소니로 개명되었다. 소니는 20세기 후반에 세계 전자제품 생산업체가 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전 세계 가전 판매의 대면서 마쓰시타지만 2위 소니가 혁신을 주도했다. 1957년 소니는 세계 최초의 포켓 트랜지스터 라디오, 1960년 최초의 완전 트랜지스터 흑백 TV, 1969년 컬러 3세트를 선보였다.
NASA는 우주 비행사 소니 TC-50레이더를 아폴로 7호에서 발사해 우주에 사용하게 했다. 소니는 1979년 휴대용 워크맨을 선보여 2003년 가동을 중단하기 전까지 3억 4000만 대가 팔렸다. 유동적인 상태에 빠진 소니는 1987년부터 1988년까지 CBS 레코드 그룹을 인수해 세계 최대 음반사가 됐다. 그 후 1989년 소니는 미국의 정신적 상징 중 하나인 컬럼비아 픽처스를 34억 달러에 사들여 미국 내 파장을 일으켰다. 1994년에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1994년에 홈플레이 스테이션, 1966년에 노트북을 설립했다.
소니는 1992년 미국 닉슨 행정부의 경제보좌관을 지냈으며 이후 투자자문회사인 블랙스톤 그룹의 피터 피터슨 사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203년부터 1995년까지 총지배인이 된 다이케 신지는 1997년 소니 협의회를 개편한 후 사외이사로 직을 변경하였다. 서구식 통치 방식 그는 매출 5조 6000억 엔의 대기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사회가 그룹 전체를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협의회가 철저한 논의를 해야 하고 실질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이사는 10명이라고 말했다.
일본 상법도 이사들에게 집행부와 감독이라는 두 가지 기능을 부여하고, 소니는 임원과 이사진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에 따라 소니그룹 이사회는 전 회장, 총괄, 특수부장, 전무이사 등 38명으로 구성됐으며, 이사진은 대표이사 7명 이상, 사회이사 3명으로 줄었다. 피터 피터슨만 빼고 서니의 사회이사로 토모마츠 아키타 은행 회장과 이사히라 히데키 일본 골드만삭스 사장을 선임하기도 했다.
시미지는 2001년부터 외부 활동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있으며, 내부 경영 관리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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