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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디올의 일생.

by ----------------------------- 2020. 7. 9.

크리스티앙 디오르

디올은 1905년 프랑스 해변도시 노르망디 그랜빌에서 태어났다. 그는 알렉산더 루이스 모리스 디올의 다섯 자녀 중 두 번재로 부유한 실업자의 아들이다. 그는 늘 우아하고 세련된 어머니를 여성으로 형상화했고 이후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디자인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디올의 첫번째 향소인 미스 디올도 언니를 떠올리며 만들었다. 부모의 요청으로1920년부터 1925년까지 이코노미석을 통해 프랑스어를 공부해 외교관에 지원했지만 건축과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1928년 아버지에게서 받은 돈으로 미술관인 자크 본진을 열고 조지 브라크, 파블로 피카소, 장 코크테아우, 맥스 제이콥 등을 내놓았다. 1930년 경제위기로 집안이 기울어졌고, 1931년 어머니와 형이 세상을 떠났다. 갤러리를 폐쇄해야 했던 그는 친구 진오젠에게 패션회화를 배웠고 맥스 케나로부터 도색법을 배웠고 모자와 옷 색깔을 모두 아우텍투어에 그려넣어 생계를 꾸리는 편법으로 아우텍투어에 팔았다.

이후 1938년부터 로버트 피켓 옷가게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다. 1939년 제 2차 세계대전에 입대해 한동안 설계 없이 전역한 뒤 프로방스칼리안으로 농장을 운영했다. 독일은 전쟁 중 정치적 이유로 프랑스 영화를 규제했지만 사극을 장려해 디올이 이 옷을 디자인했다. 이 후 루시앙 릴롱의 쿠튀르에서 피에리 발멘과 함께의 모뎀을 맡았고, 1946년 독자적으로 섬유회사 마르셀 노우작의 지원을 받아 메이슨 크리스티리어를 설립했다.

디올의 전성기와 사망


1947년 2월 12일 자신으 ㅣ첫 패션쇼가 열렸을 때 전시된 디자인은 신복으로 불리며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같은 해 그는 패션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니만 마르쿠스 어워드를 수상하고 세계 곳곳에 지사를 설립해 사업을 확장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 세계 유수의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패션계를 이끌어온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1956년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널드 도누르 훈장이 수여됐다. 그리고 1957년 10월 23일 이탈리아 투스카니의 스파 몬테카티니에서 5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57년 회전석 시리즈를 발표한 뒤 사망했지만 설계박물간에 따르면 생선가시가 목에 걸린 뒤 심장마비가 사인이 됐다. 타임과 부고에는 카드게임을 하다가 심장박동이 멎어 사망했다고 적혀 있다. 파리에서 열린 디올 장례식장에는 2500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디올이 죽은 후 메이슨 크리스찬 디올은 몇몇 수석 디자이너들이 지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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