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디자이너8

디올옴므의 에디 슬리먼의 활동. 그는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다. 2000년대 초 디올 옴므의 대표로 부임한 그는 디자인뿐만 아니라 향수, 시계 등 일련의 제품들을 출시했다. 늘씬한 몸매를 깨고 조임 팬츠로 불리는 트렌드가 늘고 있지만, 대부분의 남성복에 비해 여성스럽다는 지적도 있다. 2007년 4월 디올을 떠나 로스앤젤레스로 건너와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2012년 3월 이브 생 로랑의 하우스 브랜드 이미지와 컬렉션은 모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이름을 올린 책임을 맡았다. 브랜드명을 생 로랑으로 바꾸고 생 로랑의 수석 디자이너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셀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에디 서먼은 1968년 파리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튀니지인이고 어머니는 이탈리아인이다. 이탈리아에는 어머니, 튀니지에는 아버.. 2020. 8. 5.
스페인의 로에베 로에베 1846년 후안 로에베 라떼가 마드리드 중부 로보거리에 피혁 공방을 설립하면서 로에베의 역사가 시작됐다. 후안 로베 라떼의 아버지는 독일인이고 할머니는 이탈리아인이었다. 그리고 1872년 독일의 장인 엔리케 로스베르크 로에가 마드리드에 정착해 피혁공방에서 일했다. 이 프로젝트는 성공해 1892년 마드리드 로보거리 일대에 로에베 광고와 마크가 붙을 정도로 번성했고 로에베는 스페인 국민으로부터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05년 엔리케 로웨 힐튼이 로베스를 대리할 때 스페인 국왕 알폰소 7세는 로베스를 스페인 왕실의 공급자로 뽑았다. 5년 뒤인 1910년 로에베는 바르셀로나에 1호점을 열었다. 로에베는 1923년 바르킬로 거리 7번지에 지점을 설립하 때까지 마드리드의 다른 지역에 지점을 개설하지 않았다.. 2020. 7. 15.
토리버치의 시작. 토리버치 토리버치 1966년 6월 그는 미국 패션 디자이너이자 사회주의자며 실업지였다. 그는 아그네스 어원 학교를 졸업한 후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마술사를 공부했다. 졸업 후 뉴욕에 간 후 패션 업계에서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으며 2004년 2월에 패션 브랜드가 출시되었다. 그 브랜드는 출시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 다음 헤에 오프라 윈프리의 토크쇼에서 차세대 패션 거인들로 분류되었고 미국에서는 큰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미국의 여러 대도시에서 그들은 소매점을 열로 바그다드 굿맨과 색소폰 애비뉴와 같은 고급 백화점을 열었다. 그의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러 차례 최고의 디자이너의 명예를 누리고 있으며, 뉴욕의 주요 사회 및 엔터테이먼트 기업들과 지속적으로 교류를 했다. 가장 대표적인 히트 제품은 토닉.. 2020. 7. 15.
돌체앤가바나의 시작 돌체앤가바나 도메니코도르체는 1958년 8월 13일 시칠리아 섬 풀리지제놀로사에 태어났다. 스테파노 가바나는 1962년 11월 14일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돌체는 6세 때부터 의상을 디자인해 재단하기 시작했는데 돌체가 가바나가 근무하는 의류회사에 전화를 걸어 취업 상담을 했을 때 처음 통화를 했다. 가바나씨는 회사에 취직해 돌체를 지원해 새로운 디자인의 스케치를 제공할 뿐 아니라 패션회사의 디자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도 알려줬다. 돌체는 취업 후18개월간 군대에 징집돼 복귀한 뒤 1982년 디자인컨설팅회사를 차렸다. 이들은 항상 개발업자들의 장부를 나눠 결국 회계사들이 공동으로 비용을 높이기 쉽도록 청구서를 발행할 것을 건의했고 이후 두 사람은 돌체앤가바나 라라는 이름으로 청구서를 제출하기 시작했고 .. 2020. 7.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