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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코코샤넬과 나치의 관계.

by ----------------------------- 2020. 8. 5.

코코샤넬

샤넬은 정말 나치 활동을 했을까?

 

 

 

 

세계적인 명품 코코 샤넬은 국내에서도 유명한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이 나치 독일의 스파이가 된 이유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세상에 공개됐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이스라엔 일간지 '더 국토'의 보도를 인용해  예루살렘에서 열리는 유대인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프랑스 안내서에서 소개했다. 이 영화는 최근 몇 년간의 코코 샤넬의 숨겨진 스파이 행위, 특히 그녀가 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 독일 점령 하에 남프랑스를 통치했던 정부와 더 많은 거래를 했던 것을 보여주었다. 

 

모자와 운동복으로 유명한 코코 샤넬은 1921년 에르네스토 관장이 의뢰한 넘버 5 향수였다. 1924년 그녀는 유대인 기업가 피에르, 파레토 형제들과 함께 향수와 미용 제품을 제조하는 회사인 라시 오토 데 파르 폰 찬을 결성했다. 수익금의 분 베는 케메 레 브라더스가 70%, 코코샤넬이 10% 그리고 파리의 갤러리 라파예트가 10%를 차지하였다. 

 

 

이 분배는 독자들이 보기에도 느낄 수 있드시 코코 샤넬 또한 소유권이 분배되는 방식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녀는 독일령 프랑스 점령의 귀족이었으며, 자신보다 13살이나 어린 독일 장교 한스 코헨 폰 딩가 그와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그의 허리띠인 해머 형제의 브랜드 타이틀을 빼앗으려고 하자 결국 스파이 활동을 시작했다. 

 

베르테 헤메르 형제는 박해를 피해 뉴욕으로 결국 도망쳤지만 샤넬이 망명할 것으로 예상하고 프랑스 아리에서 독일군에 무기를 판 친구 펠릭스 아미르를 매수했다. 그리고 그 회사는 샤넬 향수의 소유권 또한 양도하였다. 정전협정이 체ㄷ결되 후 아미오는 브랜드 소유권을 텔 휴머 형제에게 돌려주었다. 이것은 그 사건 이우 아주 오래 뒤에 벌어진 일이다. 



기대에 못 미친 샤넬은 1941년 아미오의 소유권은 완전하게 거짓이며 완전한 소유권을 나에게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군수품을 공급하는 아미르와 관계를 맺기를 원하지 않았다. 결국 독일인들은 샤넬의 요청을 거절했고, 상황을 악화시켰다. 

 

 

1944년 마침내 파리가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코코 샤넬은 적을 도왔다는 이유로 프랑스의 저항으로 체포되었다. 그는 당시 62세의 나치 장교의 연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청년은 그녀에게 집을 마련하자고 제안했지만, 여권을 보여주겠다고 하고서는 여자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윈스턴 처칠은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을 때 그녀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이후 카콜 샤넬은 독일군 장교들의 연인과 함께 스위스로 이민을 갔으나 곧 파리로 다시 돌아왔다. 1950년 초, 버트 힘머 형제는 판매가 감소하기 시작한 후 극적인 화해를 한 70세의 샤넬을 발견했다. 결과적으로, 코코 샤넬은 두 동강 났다. 전쟁 중에 그는 향수 판매로 900만 달러의 보상금을 받았다. 베르테 해머 형제는 샤넬의 브랜드 이미지를 손상시킬까 봐 두려워했고, 샤넬은 결국 두 형제를 처벌하지 않았다.

과거에도 콬 샤넬의 나치스 스파이 행위가 여러 차례 거론됐다. 2011년 미국 언론인 할 버겐은 샤넬 전기를 썼다. 샤넬의 비밀전쟁에서 샤넬이 독일 장교의 애인의 조언에 따라 스파이가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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